막걸리 명인이 500년
전통누룩으로 빚어내는 전통막걸리
“전통막걸리는 우리의 혼이 들어 있는 고유의
문화유산이다”
전국에는 400여개의 막걸리 양조장에서 각양각색의 막걸리를 빚어낸다. 술 맛이 제 각각이며 자신들이 빚는 술맛이 최고란
자부심을 갖는다. 그런 자부심을 갖고 막걸리를 빚는 양조장 대표들이 좀 더 좋은 술을 만들어 보겠다고 찾아드는 곳이 있다.
바로 부산 금정산에 터 잡고 있는 ‘금정산성막걸리(대표이사 劉淸吉, 60)’ 양조장이다. 기자 역시 그동안 소문으로만
듣던 ‘금정산성막걸리’ 양조장을 방문 하여 막걸리 맛을 보니 금정산성막걸리가 명불허전(名不虛傳) 소리를 듣는 것이 괜한 말이 아니란 것을
실감했다.
◇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금정산성누룩
금정산성막걸리의 유청길 대표의 천 인상은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느낌이다. 개량 한 복을 입은 탓인가. 온
몸으로 전통을 고집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을 기대하며 왜 금정산성막걸리가 유명한가라고 묻자 유 사장은 기다렸다는 듯, 누룩 한 개를 꺼내
놓는다.
“바로 이 것(누룩을 가리키며) 때문입니다. 금정산성 마을에서는 500여 년 전부터 누룩을 빚어 왔다고 합니다. 산성에
있는 마을이라 별다른 농토가 있었던 곳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생계수단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누룩이 주요 소득원이 되었고, 관계기관의
밀주단속 앞에서도 꿋꿋하게 누룩을 지켜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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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청길 대표가 모친(전남선 여사)과 누룩방에서 누룩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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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국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누룩마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좋은 누룩을 사용해서
술을 빚으니까 술맛이 좋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누룩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낸 네모진 누룩도 꺼내면서 둘을 비교 해보란다. 전문가가 아닌데도 둥글게 만든
금정산성막걸리 누룩에서는 밀 향이 배어 나온다. 금정산성막걸리 누룩은 피자처럼 원형이다. 그러면서 가운데는 얇고 가장자리는 두툼하게 만든 역사가
50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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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술을 빚어 내기 위해선 잘 저어줘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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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10여 년 전 일본의 효모를 연구 하는 학자들이 방문 한 적 이 있었습니다. 그 때 우리 누룩을 보고는 감탄 하는 것이 아닙니까. 참으로
과학적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가장자리가 두툼하여 수분을 더 많이 간직할 수 있어 누룩균을 전체적으로 골고루 생성될 수 있도록 하는 조상의
지혜가 담겨있는 과학적인 누룩이라고 말해주었다.
선조들이 빚어온 누룩이 그렇게 과학적이란 데 놀라면서 더욱 열심히 누룩을 빚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유 사장은
말한다.
금정산성누룩은 통밀(주로 경상도 지방에서 재배한)을 굵게 갈아서 틀에 넣지 않고, 베보자기에 싸서 발로 둥그렇고 납작하게
딛는다. 이렇게 딛어진 누룩은 누룩방의 선반위에다 짚을 깔고 보름 정도 열이 나게 띄운다. 그리고 숙성단계를 거쳐야 사용이 가능하다. 누룩은
오래 묵을수록 좋은 술 맛이 난다.
현재 산성마을에서 누룩을 빚는 집은 금정산성막걸리 양조장 말고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누룩 딛기가 녹녹한 일이 아니고
수입도 높지 않아서란다.
그러나 금정산성막걸리에서는 하루 400여장의 누룩을 만든다. 15일 정도 누룩을 띠우고 30여 일간 숙성시킨다. 하루
사용하는 누룩이 400여장 정도여서 항상 2만여 장의 누룩을 비축해 둔 셈이다.
◇ 전통누룩으로 빚은 막걸리에선 과일향이
난다
일반적으로 소주를 빚을 때는 흑곡(黑麯)을 막걸리를 빚을 때는 백곡(白麯)을 사용하지만 전통주를 빚을 때는 황곡(黃麯)을
사용한다. 그런데 금정산성막걸리를 빚을 때 사용하는 누룩은 이 세 가지 누룩이 가지고 있는 당화효소와 효모가 고루 들어 있는 누룩이기 때문에
술맛이 독특하다는 것이 유 사장의 설명이다.
이 마을이 오래전부터 누룩을 빚어 온 것은 환경적인 영향이 크다고 본다. 오염되지 않은 좋은 물맛, 그리고 누룩이 잘
숙성 될 수 있는 기후 조건 등이 좋은 누룩을 만들 수 있게 했고, 이 누룩을 사용한 막걸리가 맛이 좋아 명성을 얻은 것은 아닐까.
막걸리를 빚는 원리는 누룩과 쌀, 그리고 물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누룩이다. 물론 입국(粒麴)을
사용해서도 막걸리를 빚을 수 있지만 좋은 효모균이 들어 있는 누룩으로 빚은 막걸리에서는 과일향이 올라온다. 일반적인 첨가물로는 낼 수 없는
향이다.
동래온천장 서북쪽 금정산(金井山, 801.5m) 계곡의 250m의 지하 암반수를 사용하여 빚은 알코올 8%의 막걸리에서는
과일 향뿐 아니라 구수한 맛도 느낄 수 있어 한번 먹어본 사람들은 이 막걸리 맛을 잊을 수 없다.
금정산 이름에서 우물 井자가 들어 간 것만 보아도 이 지방 물맛이 좋은 것을 짐작케 한다.
◇ 대통령령으로 민속주
1호로 허가 받은 금정산성막걸리
금정산성막걸리 발전 과정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인물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5.16 군사정변 이전
부산군수사령관 시절 박 전 대통령은 당시 밀주였던 금정산성막걸리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그 후로 대통령이 되고 나서 초두 순시차 부산을 찾았을
때 박 대통령은 금정산성막걸리가 생각나서 이를 찾자, 당시 부산 시장이던 박영수 시장은 ‘금정산성막걸리’가 밀주여서 생산이 안 된다고
했다.
당시 시·군에는 1개의 막걸리양조장만 허가 하던 시절이라 중복하여 허가가 힘들다는 전후 사정 이야기를 듣고 나서 박 전
대통령은 막걸리를 합법적으로 제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이 같은 지시로 나온 것이 대통령령(제9444호)이다.
이 영으로 1979년 ‘금정산성막걸리’는 민속주 1호로 허가 받은 것이다.
이렇게 양성화된 금정산성막걸리는 주민들의 참여로 1979년 유한회사로 ‘금정산성 토산주’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전국에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 유청길 대표 대한민국 최초 막걸리분야 식품 명인
되다
금정산성마을에서 태어난 유청길 사장은 사회생활 첫 걸음이 해양수산부 공무원이었다.
“20여 년 전 당시 제 월급이 모두 합쳐서 1백70만 원 정도 였습니다. 그런데 동네 친구들은 그 돈을 하루에
벌더라고요. 아이들 셋을 월급으로 공부시키기가 어렵고, 친구들 샘도 나고 해서 공무원을 그만두고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시작 초기엔 하루 막걸리
60병정도 생산하고 팔았습니다. 괜히 공무원을 그만두었나 하는 생각이 났지만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전남선)에게 누룩 만들기와 막걸리 제조방법을
자연스럽게 전수받은 것을 십분 발휘하니까 나날이 매출도 늘고 생산량도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유 사장은 “금정산성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제조과정상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우리 전통문화를 지키고 우리의 맛을 계승해 나가야 한다는 의지로 금정산성막걸리를 생산 보급하고 있다”고 말하고, “제 목숨이 다 하는
날까지 전통문화를 유지하는데 노력하겠다” 말했다.
전통막걸리에 힘쓰고 있는 유 대표의 노력은 정부도 모를 리 있겠는가. 농림축산식품부는 2013년 12월3일 대한민국 최초
막걸리분야 식품 명인(제49호)으로 금정산성토산주 유청길 대표를 선정했다.
모르긴 해도 막걸리분야에서 명인이 지정되긴 어려울 것 같다. 명인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술만 잘 빚는다고 선정되는 것이
아니고 각종 문헌 등에서 입증될만한 고증이 나와야 하는데 그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유 사장은 “막상 명인으로 선정되고 나니까 각종 분야에서 제제를 받는 것이 많지만 자긍심만은 대단하다”고 했다.
◇ 우리의 자부심, 금정산성막걸리
부산의 명소인 금정산 기슭에 자리 잡은 금정산성마을은 해발 400m의 분지에 아담히 자리 잡은 산성마을로 해발
500~600m 높이의 금정산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풍광이 아름다운 마을이다.
현재 마을에는 현재 600여 가구 1300여명의 주민이 관광객과 등산객을 상대로 염소고기와 닭, 오리 백숙을 하는 식당을
운영 한다.
사적 제215호로 지정되어 있는 금정산성은 우리나라에서 산성으로는 가장 큰 규모로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문헌상으로는 조선 숙종 때 완성한 것으로 되어있다.금정산성은 일제강점기에 훼손당하여 방치 해 있던 것을 1971년 국가지정 사적으로
지정이 되면서 1972년부터 연차적으로 복원과 보수를 계속하여 지금은 부산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금정산성막걸리는 추측컨대 조선 초기부터 이곳 화전민이 생계수단으로 누룩을 빚기 시작한데서 비롯되었으며 숙종
32년(1706년) 왜구의 침략에 대비키 위해 금정산성을 축성하면서 각 지역에서 징발된 인부들을 위해 막걸리 빚어 먹던 것이라고
여겨진다.
축성공사가 끝난 후, 고향에 돌아가서도 그 맛을 그리워했던 인부들의 입소문은 전국 방방곡곡으로 널리 보급됐고, 일제
강점기에는 널리 만주와 일본까지 건너갈 정도로 명성을 떨쳤다는 것이다. 1960년부터 정부의 누룩 제조 금지로 한 때 밀주로 단속을 받았으나
주민들은 단속의 눈을 피해 술을 빚어 명맥을 유지해 오다 1976년 전통 민속주 제도가 생기면서 활성화 된 것이다.
유 사장은 “독일의 맥주 순수령 처럼 우리나라에도 막걸리 순수령이 있다면 거기에 가장 부합하는 술이 금정산성막걸리가
아닐까 생각 한다”고 강조했다.
처음 시작당시 하루 60병 정도 생산 하던 것이 현재는 하루 평균 750ml 병을 기준으로 6천 병 가량을 생산하기에
이르러 1공장의 생산 한계로 2013년도에 2공장을 짓고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어 지금은 월 매출만도 3~4억 원에 이를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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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5~6병의 막걸리를 마신다는 유청길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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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 식초도 만들랍니다”
금정산성막걸리는 뒤 늦게 지난 해 7월에서야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되었다.
“찾아가는 양조장으로 선정 되기 전에도 연간 수천 명씩 우리양조장을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다보니 거기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는데 좋은 제도여서 신청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금정산성막걸리는 자체적으로 막걸리 박물관을 가지고 있다. 아직은 전시할 물품들만 쌓아 놓고 있지만 상당량의 전시품을
수집해 놓은 상태다.
이 공간에서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맞아 누룩 만들기 같은 체험을 한다.
1공장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는 지금 한창 터파기 공사가 한창이다. 전통식초공장을 짓기 위해서란다. 사업의 다각화가 아니라
정부에서 제대로 된 전통 식초를 생산하라고 해서 공장을 짓는 것이라 했다. 전통 식초는 우리의 전통누룩으로 빚은 술이라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금정산성막걸리에서는 매년 7월7일에 ‘금정산성막걸리 동창회’를 개최 합니다. 그 때 꼭 참석하세요”
<글·사진 김원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