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의 전통주 인문학] 금정산성막걸리에 숨은 발표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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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일간 직접 띄운 누룩, 풍미 깊은 술맛이 비결
금정산성막걸리의 가장 큰 특징은 500여년간 이어온 전통방식의 누룩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이 누룩을 만드는 '유가네 누룩'의 유청길 대표가 누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술의 맛과 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재료가 누룩이다.
'애는 버려도 누룩은 버리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다. 전통주에서 누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집집마다 가양주를 빚어왔던 예전엔 술을 만드는 누룩이 그만큼 소중했다는 뜻일 게다.
누룩이란 뭘까. 누룩은 곡물에 누룩곰팡이를 배양시킨 후 말려놓은 발효효소제이다. 발효효소제라고 하는 것은 누룩 속에는 전분을 당으로 바꿔주는 전분분해효소와 당을 먹고 알콜을 만들어주는 효모가 함께 들어있다는 말이다.
전통주는 이 누룩을 쌀, 물과 혼합해서 만든다. 이 중에서 술의 성패(成敗)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 술의 맛과 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재료가 누룩이다. 때문에 좋은 술을 빚는다는 것은 좋은 누룩을 만드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술맛은 누룩이 좌우한다.
누룩은 옛날부터 '곡자(麯子)' 또는 '국자(麴子)'라고 불러왔다.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에 따르면 곡(麯)이나 국(麴)에 아들자(子)를 붙여야 효모균이 있는 누룩이라고 했다. 아들자(子)를 써야 대를 잇는다는 의미이고 술을 만드는 술씨를 갖고 있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술씨가 바로 효모균이다. 때문에 아들자(子) 없는 국(麴)은 효모가 없는 것, 즉 개량누룩이고 입국방식이라는 일본식 누룩이다.
누룩으로 술을 빚으면 누룩의 상태에 따라 술맛이 일정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누룩은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고 누룩을 띄우는 계절에 따라, 집안의 환경에 따라, 누룩을 어떻게 어느 정도로 디디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반면 일본식 술빚기에선 입국방식이라고 해서 찐쌀에 당화효소인 곰팡이만 배양시켰기 때문에 반드시 효모를 따로 넣어줘야 한다.
이것이 일본누룩인 코지이고 코지를 우리말로 바꾼 것이 입국(粒麴)이다. 따라서 입국으로 술을 빚는다고 하면 일본의 술빚는 방식이다. 입국은 발효를 담당하는 종균을 따로 파종해서 단일균을 배양, 증식시킨 누룩이다. 일정한 배양균을 사용함으로써 술맛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어 술빚기를 표준화하고 과학화할 수 있었다.
전통누룩의 품질이 일정하지 않아 술맛도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는 것은 단지 단점으로만 볼 수 없는 측면도 있다. 누룩에 따라 다양한 술맛이 나오는 게 장점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술의 풍부한 맛은 누룩 속의 다양한 곰팡이가 만들어내는 여러 유기산과 남아있는 당의 결합에 의해 만들어진다. 즉 누룩에서 나오는 맛인 것이다.
◆일제시대 전통누룩이 거의 사라져
누룩은 역사적으로도 부침을 거듭해왔다. 조선시대 때는 흉년이 들어 쌀이 귀해지면 금주령을 내렸다. 이때는 누룩의 거래까지도 금지시켰다. 누룩 없이는 술을 빚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금주령 기간 외에는 곳곳에서 누룩가게가 성업을 이뤘다.
일제강점기 땐 전통누룩이 거의 사라졌다. 조선주조사 자료에 따르면 1924년 전국에 2만8천206개소의 누룩 제조공장이 있었다. 일제는 술에 대한 세금을 체계적으로 거둬들이기 위해 밀주의 원료가 되는 누룩 제조공장을 통폐합시켰다. 그 결과 1929년에 이르러서는 누룩생산 공장이 786개소로 급감했다.
1963년 이후 쌀이 부족해지면서 양조할 때 백미를 사용하는 것조차 금지했다. 쌀 대신 밀가루와 고구마 등이 막걸리 원료로 사용됐다. 양조에서 쌀 사용을 금지시키자 집집마다 빚던 가양주문화도 사라져갔다. 이에 따라 누룩 사용도 자연히 사라져갔다.
근래에 들어와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누룩도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옛 문헌 속에 등장하는 전통주와 누룩을 되살리려는 노력이 병행되고 있다. 누룩을 생산하는 공장들도 새롭게 등장했고 한국식품연구원 등에서 전통누룩과 효모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금은 누룩의 품질에 따라서 맛과 향 등 전통주의 품질이 판가름난다고 하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누룩은 전통주를 세계의 다른 술들과 차별화시키는 가장 좋은 재료이기 때문이다.
금정산성막걸리
◆유가네 누룩과 금정산성막걸리
금정산성막걸리는 웬만한 술꾼이라면 "아! 그 술!"하면서 반가워할 술이다. 수백년간 제조방법을 이어온 전통누룩에서 나오는 신맛과 언뜻언뜻 비치는 누룩 향에다 8%라는 높은 알콜도수는 앉은뱅이술이라고 할 만큼 주당들에겐 알려져 있다.
이 술은 부산 금정산 중턱 금정산성마을에 자리잡은 유한회사 금정산성토산주(대표 유청길·66)에서 만든다. 원래 양조장 지역제한 규정에 따라 정식 양조장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군수기지사령관으로 근무하면서 자주 마신 인연으로 1979년 우리나라 최초의 민속주로 지정됐다.
금정산성막걸리의 가장 큰 특징은 500여년간 이어온 전통방식의 누룩으로 만든다는 점이다. 이 누룩을 만드는 '유가네 누룩'에선 요즘도 일주일마다 1,000~1,500장의 밀누룩을 만들어 낸다. 누룩을 만드는 방식도 독특하다. 경력이 50년 이상 된 70~80대 할머니 세 명과 8년 정도의 신참 두 명이 직접 발로 디뎌서 둥근 피자도우 모양의 누룩을 만든다. '족압식 누룩'이다.이렇게 단단하게 디뎌서 만들수록 천천히 수분이 건조되고 미생물 증식 기간은 늘어난다.
누룩 만드는 데는 시간도 많이 걸린다. 밀을 거칠게 빻아 반죽을 하고 누룩방에서 일주일 정도 발효시킨다. 이때쯤이면 누룩꽃이 활짝 피어나기 시작한다. 48~50℃인 누룩방의 온도는 연탄불로 조절한다. 1주일간의 발효가 끝나면 한 장 한 장 펴서 2~3일 정도 햇볕에 말리며 법제를 한다. 나쁜 냄새를 날려 보내고 잡균을 억제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후 다른 곳으로 옮겨 누룩을 세워서 한 달 정도 더 건조시킨다. 누룩 제조에 45~50일 정도 걸리는 셈이다.
생산된 누룩은 대부분 금정산성막걸리를 만드는데 쓰인다. 이렇게 대규모 상업양조장에서 자기누룩을 만들어 술을 빚는 곳은 금정산성막걸리가 유일하다. 지금은 유가네누룩을 외부로 유통도 하고 있다. 외부 유통은 2년 정도 됐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전국적인 지명도의 전통주 제조공장에서도 이 누룩을 가져다 쓴다.
'유가네 누룩'의 유청길 대표가 누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막걸리 식품명인,유청길 대표
산 위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끄트머리에 있는 누룩방의 구조는 특이했다. 원래의 누룩방은 두꺼운 흙벽이었는데 이곳으로 옮긴 후 황토벽으로 바뀌었다. 4개가 나란히 붙어있는 작은 황토누룩방의 문을 열자 연탄불의 열기가 훅 뿜어져 나온다. 안에는 발효 중인 누룩 수백 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이렇게 누룩방의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해주면 공기 중에 떠다니는 곰팡이와 미생물이 누룩에 착상하게 됩니다"
똑같은 누룩방에서 발효시키더라도 계절에 따라 온도와 습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누룩의 품질은 조금씩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게 술의 발효에 영향을 미치고 맛과 향에도 미세하게 차이를 나게 한다. 하지만 유청길 대표는 이런 점이 오히려 전통누룩을 쓰는 술의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개량누룩 혹은 입국을 쓰면 어느 양조장에서 생산하든 맛이 똑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전통누룩을 쓰는 금정산성막걸리는 다른 술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풍미가 있습니다"
막걸리와 자전거실제 이 전통누룩으로 만든 금정산성막걸리는 신맛이 특징이다. 이 신맛과 누룩향 때문에 부담스러워하는 소비자도 있다. 그래선지 오랫동안 유지해오던 알코올 8도 대표술 외에 6도짜리 제품을 내놨고 작년 9월부터는 요즘 젊은층에 맞춘 5도짜리 제품도 출시를 했다.
현재 금정산성막걸리의 생산량은 매일 5천병 정도. 생산량이 급증한 것은 전통누룩을 쓴다는 점 외에 2013년 유 대표가 막걸리부문 식품명인으로 지정된 영향이 컸다.
"금정산성막걸리마저 전통누룩을 쓰지 않으면 수백년 이어온 전통주문화는 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식품명인으로서 전통누룩의 명맥을 이어가야죠."
박운석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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