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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마을 누룩과 산성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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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부산탐식프로젝트 <58> 산성마을 누룩과 산성막걸리


- 옛 방식대로 누룩으로 빚은 귀한 막걸리
- 한때 제조금지령 내려 몰래몰래 만들기도
- 산성마을을 특구로 지정, 비법 전수하면 어떨까

부산의 중년 술꾼들에게 회자되던 말 중에 '에덴토주'는 올라가면서 취하고, '산성막걸리'는 내려오면서 취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만큼 산성막걸리와 에덴토주는 부산 모주꾼들에게 큰 사랑을 받기도 했거니와, 한때는 독하고 뒷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취기와 숙취를 남기는 악명 높은 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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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룩방에 누룩을 발효하는 모습.

그래서 '에덴토주'는 하단 뱃머리에서 시내버스를 타기 위해 에덴 공원으로 오르면서 엎어지고, 산성막걸리는 금정산성에서 온천장으로 내려오면서 자빠지게 하는 술이었다. 하여 얼굴에 훈장처럼 큰 생채기 한두 곳 달지 않으면 '부산 막걸리 좀 먹어봤다'는 말조차 못하던 시절이었다. 이는 막걸리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 하던 시절, 술을 빨리 익히기 위해 소주나 당분을 첨가하는 등 다양한 방편을 쓰는 과정에서 일어난 불상사이기도 했다. 당시는 쌀과 누룩으로 빚은 쌀막걸리 제조는 불법이었다. 그러나 밀막걸리로 성이 안 차던 술꾼들은 이 밀주(密酒)라 불리던 쌀막걸리를 숨어서 먹곤 했던 것이다.

그 시절 전국의 술꾼들에게 사랑을 받아오던 막걸리가 금정 산성마을에서 빚은 산성막걸리였다. 맛이 진하면서도 향이 좋고 뒤끝이 깔끔하기에 그랬다. 한 잔을 마시더라도 입안에서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 것이 그 특징이기도 하다.

■전통 누룩발효로 담근 막걸리… 전국 술꾼 사랑 독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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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막걸리를 젓고 있는 (유)금정산성 토산주 유청길 대표.

산성막걸리는 일찍이 조선 초기부터 전래하여 왔다는데, 산성마을의 화전민들이 생계 수단으로 누룩을 빚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숙종 32년(1706년)에는 왜구의 침략에 대비해 금정산성을 축조했는데, 당시 전국 곳곳에서 징발된 인부들이 이 막걸리 맛에 반해 입소문을 냄으로써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전한다.

이후 산성막걸리는 전국 방방곡곡으로 널리 보급됐고, 일제강점기 시대에는 만주와 일본까지 건너갈 정도로 그 명성을 떨쳤다. 그뿐만 아니라 산성막걸리의 원재료인 누룩을 많이 만들고 적게 만드는 해의 차이에 따라, 동래를 비롯한 동부 경남 일원 미곡장의 곡물값이 오르내릴 정도로 시장을 좌지우지했다.

산성막걸리의 뛰어난 맛은 술의 주원료인 '누룩'에서 기인한다. 좋은 누룩은 누룩 몸피에 누룩곰팡이가 고루고루 잘 퍼져야 한다. 산성마을은 맑고 깨끗한 물과 공기, 적당한 온도 등으로 누룩이 잘 건조되고 발효가 잘된다. 좋은 누룩을 생산할 수 있는 지역적 환경을 가진 곳이다. 그러하기에 한때 산성마을은 오랜 기간 집집이 누룩을 만들어온 전국 유일의 '누룩 마을'이었다. 한때 600여 가구가 누룩 생산으로 생계를 이어왔던 것. 그러나 1960년대부터 정부의 '누룩'과 '쌀'로 만든 술 제조 금지 시책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된다.

현재 국내 막걸리는 두 가지 방법으로 만들고 있다. 대부분 주조회사가 선호하는 효모균을 활용해 발효하는 방법과 산성막걸리처럼 누룩으로 발효하는 방법이 있다. 효모 발효는 술맛이 일정하고 정제되어 깔끔한 느낌이다. 그러나 누룩 발효는 술을 담글 때마다 온도와 습도 등 주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기에 일정한 술맛을 내기 어렵지만, 그만큼 각양각색의 다양한 맛을 구현해 내므로 마시는 재미가 흥미진진하다.

전통적으로 누룩 발효로 술을 담그던 산성마을은 누룩 제조 금지 시책 때부터 정부와 '누룩'으로 인해 '전쟁 아닌 전쟁'을 벌이게 된다. 단속원들에게 누룩을 안 뺏기기 위해 돌아가며 보초를 서기도 하고, 백두골 산봉우리에서 망을 보며 단속 트럭이 올라오면, 지금의 낙원집 앞에 걸어놓은 종을 울려 누룩을 숨기곤 했던 것. 단속할 때마다 여인들은 누룩을 자신의 치마 속에 숨기기도 하고, 단속원이 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금줄을 치거나, 재래식 변소에 누룩을 숨기는 등 묘안 또한 백출했다. 주로 누룩은 마을 여인들이 만들었기에 당시 산성마을 여인들은 거의가 '주세법 위반'의 경제사범들이었다. 그만큼 산성마을 여인들의 치열한 삶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통령이 지정한 전통 민속주로 막걸리 특구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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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이 누룩을 밟는 모습. (유)금정산성 토산주 제공

지금도 산성마을에는 전국에서 유일하다시피 한 수제 '누룩방'이 있다. 산성마을의 여인들이 직접 발로 꼭꼭 밟아 누룩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발효가 제대로 되기 때문이다. 발효가 잘된 누룩은 몸피 전체에 곰팡이가 하얗게 슬어있다. 그들 말로 '잘 뜬 누룩'이 술맛 좋고 향이 진한 막걸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유한회사 금정산성 토산주' 대표 유청길(59)씨의 모친인 전남선 여사가 '산성누룩'의 대표적인 인물. 지금은 그의 딸들이 맡아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9.9㎡(3평) 크기의 누룩방 5곳에서 누룩을 생산하고 있는데 누룩방 한 곳에 누룩 360장, 총 1800장을 만든다. 일간 360장, 산성막걸리 1만 병을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향긋한 과일 향과 함께 걸쭉하면서도 입에 착착 감기는 전통 막걸리 맛을 구현하고 있기에, 현재까지 산성막걸리는 우리 전통의 술 발효방법인 '누룩 발효'를 고수하고 있다. 이렇듯 산성마을 사람들의 애환만큼 사연이 많던 산성막걸리는 부산군수사령관 시절부터 산성막걸리를 즐겨 마셨던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양성화된다. 박 대통령은 1979년 지방 순시 당시 박영수 부산시장의 '민속주 지정 건의'를 수용해 1980년 대통령령(제9444호)으로 '전통 민속주' 제도를 만들고, 산성막걸리를 '대한민국 민속주 제1호'로 지정한다. 허가 당시 산성마을 주민 150여 명이 계좌당 5만 원씩 288계좌, 자본금 1400여만 원을 출자해 '금정산성 토산주'라는 이름으로 유한회사를 설립해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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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막걸리는 전통 누룩으로 발효해 다양한 맛을 구현하며 마시는 재미를 돋운 다.

한때 집집이 누룩이 다르니 집집마다 술맛 또한 달랐던 다양성의 술, 산성막걸리. 때문에 마실 때마다 흥미진진했던 술, 또한 부산 사람들의 자유스러운 성정이 내포되어 있는 술이 바로 산성막걸리였다.

해서 지금에 이르러 산성마을을 막걸리 특구로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금정산성 마을을 '술 익는 마을'라는 콘셉트로, 집집마다 각각의 비법으로 누룩을 제조하여 다양한 특색의 향과 맛을 가진 막걸리를 생산해내는 것이다. 그리고 집집이 술이 익으면 '술 깃발(酒旗)'을 걸어 놓고 술을 판다. 집집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술 깃발'이 바람에 펄럭일 때 산성마을의 술은 그렇게 맛있게 익어갈 것이다.
 

   

여러 제약이 많을 것이다. 주세법과 건축법 등.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이 산성막걸리를 여러 제약 속에서 대통령령으로 '대한민국 민속주 제1호'로 양성화시켰듯이, 다양한 아이디어와 의지가 모이면 못 이뤄낼 꿈도 아닐 듯하다. 

 


문화공간 수이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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