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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마다, 가문마다 전해 내려오는 전통 민속주.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이 가운데 많은 종류의 술이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최근 사라졌던 전통 민속주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생소한 이름의 전통주도 속속 눈에 띈다.

쏟아지는 민속주 가운데 우리나라 민속주 1호는 무엇일까. 답은 ‘금정산성 토산주’(산성막걸리)로 백두대간의 끝자락인 부산 금정산의 산성마을에서 빚는 막걸리다.

#대한민국 민속주 1호

막걸리가 민속주 1호가 된 것은 우리 민족에게 가장 대중적인 술이기 때문이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민속주 지정에는 사연이 있다.

1960년 주세법으로 누룩 제조를 금지한 이후 산성막걸리는 마을 사람끼리만 만들어 마시는 것으로 명맥을 이었다. 5·16 군사쿠데타 전 부산 군수사령관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산성막걸리 맛에 흠뻑 취하곤 했다. 그 맛을 잊지 못한 박 전대통령은 79년 부산에 순시차 내려와 산성막걸리를 찾았다. 그리고 ‘사라질 위기’라는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양성화할 것을 지시(대통령령 제9444호)했다. 이어 81년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국풍 81’ 행사에서 가장 많이 팔리면서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노역의 허기와 피로를 달래준 술

산성막걸리의 유래는 정확하지 않지만 임진왜란 이전까지 올라간다. 화전민들이 생계수단으로 술을 빚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숙종 32년(1706년)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금정산성을 축조하면서 외지인에게 산성막걸리의 맛이 알려졌다. 거대한 성을 쌓는 데 동원된 인부와 군졸에게 갈증과 허기, 피로를 덜어주는 새참거리였다. 인부들은 공사가 끝나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도 새큼하면서도 구수한 그 맛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맛 소문이 퍼지면서 산성마을에서 누룩을 빚는 양에 따라 동래를 비롯해 경남 일대 쌀값이 오르고 내릴 정도였다고 한다. 부산시 시사편찬실 표용수 위원은 “일제 강점기에 산성에 살던 학생들은 책가방에 누룩을 넣어 다니며 동래에 내다팔아 학비를 조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항우장사도 세 주전자는 못 비운다

산성막걸리는 인공재료를 사용치 않고 누룩과 쌀, 물 세가지만으로 전통제조 방식대로 만드는 자연 발효주다. 산성마을은 금정산 봉우리에 둘러싸인 분지로 해발 400m가 넘어 평지보다 기온이 평균 4도 이상 낮다. 또 예부터 맛 좋기로 소문난 금정산의 맑은 물이 산성막걸리만의 독특한 맛의 비결이다. 특히 보통 막걸리의 주도(酒度)가 5도인 것에 비해 산성막걸리는 8도이고 숟가락으로 떠먹을 수 있을 정도로 걸쭉해 ‘항우 장사도 세 주전자는 비우지 못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마을의 또 하나 자랑은 흑염소불고기와 도토리묵이다. 여기에 곁들여 마시는 산성막걸리는 등산객에겐 꿀보다 달콤하다.

현재 산성막걸리의 하루 생산량은 100말 정도. 750㎖짜리로 3,000통 가량이다. 소량 생산이어서 금정산성 일원에서만 판매되고 있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09-10-22 10:17:09 관련기사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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