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성 이야기

금정산성 이야기

금정산성 이야기

4계절 모두 아름다운 금정산성
자연 그대로의 건강이 있습니다

부산의 명소인 금정산 기슭에 자리잡은 금정산성마을은 금정산(金井山) 해발 400m의 분지에 아담히 자리잡은 산성마을로 해발 500~600m 높이의 금정산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 휴일이면 이곳을 찾는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90% 이상 녹지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며 맑은 공기와 물로 청정 자연 그대로 간직한 건강한 마을입니다.

  • 동문
  • 서문
  • 남문
  • 북문


어려울 때 백성을 품어주고
어머니와 같이 아낌없이 주는 존재, 금정산성

사적 제215호로 지정되어 있는 금정산성. 백두대간의 꼬리 끝자락에 해당하는 부산 금정산에는 신라 문무왕 때의 고승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고찰 범어사가 있을 뿐 아니라 삼국시대에 축조된 금정산성이 있습니다. 동래온천장 서북쪽 금정산(801.5m) 정상에 위치한 금정산성은 동래부 및 양산, 기장의 피난겸 항전성으로 전장 17,337m, 높이 1.5∼3m, 면적 약 8,213㎢에 이르는 산성입니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로 축성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나, 위치 및 규모 등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임진왜란 이후 국방의 중요성이 대두되어 여러차례 축성 건의가 있었으나, 1701년(숙종 27) 11월 경상감사 조태동이 재차 산성의 축조를 청하여 이루어졌으며, 1703년(숙종 29)에 준공을 보았고 4년 뒤 방대한 성을 관리하기위해 다시 중성(中城)을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성이 있었음은 1667년(현종8년) 현종이 통제사 이지형을 불러 들여 왜구방무계책(倭寇防戊計策)을 강의하는 가운데 금정산성에 대해 언급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이미 성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고대부터 남해 연안에 왜구의 침입이 심하였다는 사실로 보아 신라시대에는 이미 축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은 남아 있지 않지만 기록에 있는 건물은 좌기청 6간, 좌우행랑 각 5간, 군기고 4간, 화약고 1간, 내동헌 3간, 별전청 4간과 그 외에 장대, 중군소, 교련청, 승장소, 산성창 등이 있으며, 축성에는 동래부민과 경상감영 각군에서 차역한 민정으로 이룩된 것으로 보입니다.

금정산성은 일제강점기에 관아건물 등이 파괴, 몰수당하였으며, 일제시 시가지계획의 이름 아래 서문에서 남문에 이르는 평지의 성축은 철거되었으며 남문에서 동문에 이르는 성축도 민가가 점유하여 훼손 당하고 망월사지를 중심으로 성곽의 모습을 남기고 있다. 1971년 국가지정 사적으로 지정이 되면서 1972년부터 성곽과 동,서,남문 등을 연차적으로 복원과 보수를 계속하였으며 북문은 1989년에 복원하였습니다. 조선시대 전란이 있을 때마다 인근 주민들이 피란해 들어간 곳이어서 피란성이라고도 불렀습니다.

금정산성은 우리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금정산성은 어려울 때 백성을 품어주었으며 어머니와 같이 아낌없이 주기만하는 존재였습니다.

계좌번호 안내 1712-09-000738-0 (유)금정산성토산주

금정산성막걸리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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