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룩빚는 산성마을 술익는 풍경(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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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이남으로는 가장 길다는 금정산성의 호위를 받으며 금정산 자락에 자리한 부산 산성마을은 말 그대로 ‘술 익는 마을’이다. 동네 사람 모두가 산성막걸리의 주인이고, 마을 어디에서나 갓 빚어 낸 산성막걸리를 맛볼 수 있으니 막걸리를 빼고는 이 마을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통 봄빛으로 푸르른 금정산과 산허리를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금정산성조차도 이 마을에서는 막걸리의 맛이 되고 역사가 된다. 산성마을에 가려면 금정산을 해발 400~500미터 높이까지 올라야 한다. 요즘은 금정산에 오르는 등산객이나 금정산성을 찾는 관광객들로 북적이지만 시내를 오가는 버스가 생기기 전까지는 산마을 오지나 다름없었다. “대학 때 시내까지 두 시간 남짓 거리를 매일 걸어 다녔어요. 속으로 부모님 원망도 많이 했죠. 그런데 나이 먹고 나니 이렇게 좋은 곳이 없어요. 공기 좋지, 물 맑지, 경관 수려하지. 바위산이라 농사짓기에는 팍팍하지만 술 빚고 마시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죠.” 그래서 수백 년 전 이곳에 터를 잡은 이들은 남들 다 짓는 농사 대신 술 빚는 일로 생계를 이었나 보다. 유청길 ㈜금정산성토산주 대표(52세)는 자신을 대표주주라고 소개한다. 마을의 생계수단이었던 산성막걸리가 민속주 1호로 지정되면서 100여 명의 마을 사람들이 뜻을 모아 만든 회사가 바로 ㈜금정산성토산주다. 이곳에서 빚은 막걸리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금정산성이 지금의 형태를 갖추었던 1703년(숙종 29년) 무렵. 유청길 대표는 훨씬 이전부터 빚어지던 이 마을 막걸리가 산성을 지으러 온 외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널리 알려졌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 시작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리 마을 누룩방에 누룩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하죠. 한때 누룩 제조가 금지됐을 때도 마을 사람들은 똘똘 뭉쳐 누룩을 딛고 술을 빚었다고 해요. 그렇게 수백 년 동안 끊임없이 피워 올린 누룩곰팡이가 누룩방뿐 아니라 마을 곳곳을 떠다니고 있을 테니 사람, 공기 할 것 없이 마을 전체가 함께 술을 빚는 셈이죠.” 한때 살기 어려웠을 산성마을은 이제 외지인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어엿한 관광지가 됐다. 하긴, 맑고 수려한 자연에 역사적 유물, 맛 좋은 술까지 있으니 어찌 찾는 이가 많지 않겠는가. 그 중에서도 산성막걸리는 그 맛뿐만 아니라 전통 방식 그대로 누룩을 딛고 술을 빚는 하나의 문화로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중요한 관광자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보다도 오히려 일본 관광객들이 우리 술도가에 관심이 많더라고요. 술을 공부하는 사람부터 일반 관광객까지, 수백 년 이어 온 한국의 전통 막걸리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직접 보고 싶다며 일부러 찾아오는 분들도 많아요.” 사실 산성막걸리를 비롯한 민속주는 그동안 옛 방식을 유지해야 한다는 규제만 받았을 뿐, 별다른 혜택은 받지 못했다. 그나마 작년부터 주류세를 감면 받고 있는 정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민속주라고 해서 특별할 것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산성막걸리는 대단한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민속주 1호의 가치를 지키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마시던 술맛을 지킨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규모가 작다 보니 요즘은 주문 맞추기도 빠듯하지만, 공장을 키워서 맛이 변하면 산성막걸리라는 이름이 무슨 소용 있겠어요. 다만 돈이 안 되니 하려는 사람이 없는 게 걱정이죠. 지금은 제 노모와 여동생들이 누룩을 딛는데, 어머니 돌아가시면 누가 누룩을 딛을지….” 그래도 그는 아직 산성누룩의 전통을 잇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번거롭지만 누구든 보고 싶어 하면 누룩 딛고 술 빚는 모습 보여 주기를 마다하지 않는 것도 술맛 못지않게 술 빚는 전통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따로 황토집을 지어 누룩 딛기 시범도 보이고 전수자를 양성하겠다는 꿈도 가지고 있다. 나라에서 지정한 민속주이니 국가 차원에서 술 만드는 기술을 지키도록 관심을 갖고 지원해 주기를 바라지만, 그 전까지는 자신의 힘으로라도 산성마을의 술 빚는 문화를 널리 알리고 지키겠다는 유청길 대표. 그와 같은 이들이 없었다면 은근하고 묵직하게 목젖을 적시는 산성막걸리의 이 깊은 맛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까지 허락될 수 없었을 것이다. [출처] 산성 누룩&경기 양평 지평 막걸리 (강릉 막걸리를 사랑하는 모임) |작성자 달빛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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