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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원더풀 라이프 - 유청길 '금정산성토산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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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에서 유일한 막걸리 식품 명인인 유청길 금정산성토산주 대표가 누룩 발효실에서 누룩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술도가에 대한 어릴 적 추억 하나. 밭일하시던 아버지 심부름으로 아랫동네 술도가에 가서 막걸리를 받아와야 했다. 여름철 뙤약볕에 한참 걷다 보면 목이 타 주전자 속 막걸리를 홀짝홀짝 마셨다. '범행'이 들통날까 봐 겁이 나 개울물을 채워 가져다드렸더니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
 
"막걸리가 와 이래 싱겁노. 술도가 할망구가 또 물을 탔나 보제…." 아버지는 아들의 소행을 다 아시고도 너그럽게 용서해 주신 것이리라. 술도가 취재를 나서다 보니 불현듯 옛 생각이 나 마음이 짠하다.

500년 전통 금정산성 막걸리  
회사 다니다 마흔에 회사 맡아  
원하는 맛 안 나 버린 술만 300독  
악전고투 끝 연 매출 30억 달성  

아들, 일본 대학서 발효공학 공부  
"산성 막걸리 관광상품화 추진 기대" 

■좋은 누룩이 좋은 술 만들어
 

부산 금정구 산성로 453(금성동) 유한회사 금정산성토산주의 유청길(60) 대표와 만나기로 했다. 금정산성토산주는 막걸리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는 '금정산성 막걸리'를 만드는 회사다. 전통 방식의 막걸리 제조법을 고수하는 술도가로 전국적인 명성을 가졌다. 

정문 앞에 다다르니 벌써 구수한 막걸리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이 땅에는 막걸리를 빚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유 대표를 인터뷰 대상으로 선정한 것은 금정산성 막걸리가 '민속주 1호'인 데다 그가 대한민국 막걸리 분야의 유일한 '식품 명인'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는 세상에서 막걸리를 가장 잘 만드는 '막걸리 달인'으로 공식 인정을 받은 셈이다. 

"막걸리 잘 만드는 비법이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단도직입으로 묻자 그는 짧게 대답했다. 

"좋은 누룩, 좋은 물, 이거면 족합니다." 

말은 쉽지만, 이게 간단치 않은 일이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유 대표는 누룩 만드는 과정부터 설명했다. 누룩 만드는 일은 유 대표의 누이동생인 미옥(52)·영옥(49) 자매의 몫이라고 했다. 자매를 포함해 여성 4명이 매일 4시간 동안 250여 장의 누룩을 만들어 내는데, 전통 방식을 고수한다. 통밀을 거칠게 갈아 반죽한 뒤 오로지 발로 밟아 피자 반죽처럼 생긴 둥글납작한 누룩 판을 만든다. 기계로 찍어내는 것보다 사람의 발로 밟아 만들어야 조직이 치밀해져 우수한 누룩이 된다고 했다. 또 하나의 비법은 누룩 판의 두께에 있다. 가운데는 얇고 테두리는 두껍게 만든다. 그래야 곰팡이가 골고루 슬어 균질한 술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누룩을 빚으면 온도 40~50도의 누룩방에서 일주일간 발효 과정을 거친 뒤 일주일간 건조한다. 이어 고두밥과 잘 섞어서 적당한 양의 물을 붓고 6~8일간 기다리면 막걸리가 완성된다. 이때 쓰는 물은 금정산 지하수다.
발효 중인 누룩.
■처음 실패 딛고 연 매출 30억 '우뚝' 

명품 막걸리를 만드는 게 생각보다 간단하다며 속으로 해찰을 부리고 있는 순간, 유 대표가 귀가 번쩍 뜨일 얘기를 한다. 

"산성마을에서 누룩 종균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우리 집이 유일할 겁니다. 조상 대대로 전해오는 황국균 종균과 산성마을 고유의 미생물이 결합해 산성 막걸리의 독특한 맛과 향을 낸다고 생각합니다." 

이 집안에서 대대로 승계돼 오는 우수한 종균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다. 알고 보니 유 대표는 6대째 막걸리를 만들어 오는 중이다. 서류의 근거가 남아 있지 않은 조상까지 치면 사실상 14대째, 약 500년간 대대로 막걸리를 빚어온 셈이다. 조선 시대 금정산성 축조 때 일꾼들에게 제공한 술이 산성 막걸리의 원류라고 한다.

유 대표도 처음부터 막걸리 만들기에 열정을 쏟은 것은 아니다. 산성마을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집안의 누룩 냄새를 맡으며 자랐지만, 젊어서는 회사원과 공무원 생활을 했다. 그러다 마흔이 되던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회사를 맡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초기에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해도 원하는 술맛이 나오지 않아 하수구에 버린 술만 300독(750㎖들이 병으로 1000병)이 넘었다. '산성 막걸리는 마시고 나면 머리가 아프다'는 시중의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전통 방식을 철저히 고수했으며 부산·경남 어디라도 자신이 직접 배달에 뛰어들었다. 악전고투를 거듭한 끝에 5~6년이 지나자 '먹을 만하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10년쯤 지나면서 지금의 맛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와 더불어 매출도 급신장했다.

현재 회사는 하루에 최소 7000병, 최대 1만 병을 생산해 연 매출 30억 원에 이른다. 부산에서 매출 규모 꼴찌에서 2위로 급성장했다.
막걸리가 익어 가는 모습.
■세계인이 찾는 막걸리 만들 것 

유 대표는 가업을 잇게 할 요량으로 아들(24)을 일본으로 유학 보냈다. 아들은 벳푸대학에서 발효공학을 전공하고 있다.  

"제 집안의 오랜 경험이 축적돼 과학적인 술 담그기가 정착했지만, 그 과학의 비밀을 풀어내고 더 세계적인 술을 만드는 일은 아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 대표의 얼굴에는 가업을 잇겠다며 유학을 떠난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가득 묻어났다. 

유 대표는 최근 막걸리 식초를 개발해 10월 1일부터 시판에 들어가는 등 누룩을 활용한 사업 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하지만 막걸리 명인을 지정만 해 놓고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았다. "산성은 막걸리 역사가 길고 명인이 나오는 등 대한민국 막걸리의 메카입니다. 부산시나 금정구청에서 이를 활용한 관광 상품화 마인드를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막걸리를 세계화하기에는 유통기한의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유 대표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맞아요. 정확히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바꿔 보세요. 왜 막걸리를 수출하려고만 생각합니까. 세계 각국 사람들이 부산으로 몰려와 산성 막걸리를 맛볼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몽골의 마유주를 마시기 위해 몽골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의 대답에는 산성 막걸리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 묻어났다.

누룩과 고두밥과 물. 오로지 자연의 원료만으로 빚어내는 금정산성 막걸리가 세계적인 명주로 우뚝 설 날을 기대한다.  

글·사진=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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